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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Korg의 역사: 2부 (1986~1994년)

  2025.08.26 11:42:05
조회수 2,407
본 글은 SOUND ON SOUND 사이트에 2002년에 실린 업계 이야기 (원문: The History of Korg: Part 2, 저자: Gordon Reid) 내용을 번역한 것으로,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으며, 비상업적 정보 제공 목적으로 게시합니다.
원문 기사: soundonsound.com 바로가기

* 번역 과정에서 일부 표현은 원문과 다르게 의역/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Korg의 역사: 2부
40년의 Korg 기어

글: Gordon Reid (2002년 11월 발행)


1980년대와 90년대 초, Yamaha의 도움으로 Korg는 급격히 성장하며, 최초의 합리적인 가격대의 디지털 레코더와 피지컬 모델링 악기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Korg를 오늘날의 회사로 만든 건 바로 M1과 Wavestation 같은 세계적 수준의 신스들이었다.

지난 기사 마지막에서, 우리는 게이오 일렉트로닉이 묘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확인했다. 80년대 중반까지 이 회사는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고 전 세계 키보드 연주자들의 존경을 얻었지만, 시장의 선도 주자는 되지 못했다. 일부 제품 (특히 Polysix와 Poly 800)은 판매량이 좋았지만, 대중적인 음악 방송 프로그램 Top Of The Pops나 Reading Festival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악기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회사는 여전히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확보하지 못했고, 창업자 카토 츠토무는 여러 차례 개인 자금을 투입해 개발 자금을 충당해야 했다.

그래서 1985년, 가토는 회사를 신디사이저와 키보드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시키기 위한 전략과 개발을 시작했다. 이번 글은 3부작 역사 기사 중 두 번째로, 스튜디오와 무대를 빛낸 전자 악기들의 진화를 따라가 본다.




1986년

주요 출시 제품
• DDD1 디지털 드럼
• DSS1 61건반 샘플링 신스
• DVP1 디지털 보이스 프로세서
• KMS30 싱크로나이저
• MPK130 MIDI 페달보드
• SG1 76건반 디지털 피아노
• SQ8 시퀀서
• DRV1000 디지털 리버브
• SDD1000 디지털 딜레이
• SDD1200 듀얼 디지털 딜레이
• SDD2000 샘플링 디지털 딜레이
• SDD3300 트리플 디지털 딜레이


그러나 제품들을 살펴보기 전에, 당시 게이오 일렉트로닉 내부에서 진행된 기업 차원의 변화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일본 본사의 미국 지사를 정식으로 설립했다. 그 뿌리는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ACA(Amplifier Corporation of America)가 Unicord에 흡수되면서, Univox라는 브랜드로 일련의 진공관 앰프가 출시되었다. 1967년 Unicord는 기타 수입업체 Merson과 합병했고, 이후 Gulf & Western이라는 석유 회사에 인수되어, 이름도 길게 “Merson Musical Products, A Division of Unicord Incorporated, A Gulf + Western Systems Company”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게이오 일렉트로닉과 인연을 맺어 신디사이저, 리듬 머신, 이펙터를 수입해 미국 시장에서 Univox 브랜드로 판매하게 된다.



1975년 Gulf & Western에서 분리된 Unicord는, 당시 단순히 게이오 일렉트로닉의 신디사이저와 오르간 브랜드명에 불과했던 Korg라는 이름이 Univox보다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리브랜딩을 중단하고, 대신 미국 내 Korg 브랜드의 공식 수입/유통사가 되었다. 이 관계는 1985년까지 이어졌고, 이후 Unicord는 게이오 일렉트로닉에 인수되어 Korg USA로 재편되었다.

둘째, 게이오 일렉트로닉은 자사의 실제 회사명보다 Korg 브랜드명이 훨씬 더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Korg Inc.로 변경하며, 기업과 제품 모두에 단일하고 집중된 정체성을 부여했다.



제품 면에서 1986년 가장 큰 뉴스는 DSS1 샘플링 신디사이저의 등장이었다. 이는 Korg의 샘플러 시장 진출을 의미했지만, 놀랍게도 이후 Korg가 또 다른 키보드 샘플러를 내놓기까지는 무려 13년이 걸렸다. 당시만 해도 전망은 밝았다. DSS1은 샘플링, 가산합성, 파형 그리기 기능을 제공했는데,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고가의 Fairlights만이 제공하던 기능들이었다. 각 음성은 2개의 오실레이터로 구성되었고, 16개의 샘플이나 웨이브를 메모리에서 불러올 수 있었다. 또한 루핑, 잘라내기, 믹싱, 역재생, 연결 기능이 모두 제공되었으며, 키보드 스플릿과 멀티샘플링도 지원했다.

오늘날 DSS1은 종종 평가 절하되지만, 샘플 데이터의 오실레이터 싱크, 가변 샘플레이트 출력, 강력한 아날로그 필터, 듀얼 딜레이 라인은 80년대 중반 키보드 중 가장 흥미로운 기능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같은 해의 또 다른 혁신적 제품인 DVP1 보이스 프로세서도 마찬가지였다. DVP1은 디지털 보코더, 피치 시프터, 원시적 하모나이저, 그리고 DWGS 기반 보컬 신스로 구성된 2U 랙 장비였다. 제한된 폴리포니와 때때로 떨어지는 음질에도 불구하고, ‘ooh’와 ‘ahh’ 계열의 매력적인 음색을 만들어냈다. 상당히 유연한 장비였고, 지금까지도 그 독창성이 재현된 적은 없다.



1986년 Korg는 디지털 이펙트 유닛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DRV1000 디지털 리버브, GR1 게이티드 리버브, SDD1000 디지털 딜레이, SDD1200 듀얼 딜레이, SDD2000 샘플링 딜레이, SDD3300 트리플 딜레이 등으로 구성된 완전한 랙 시리즈를 선보였고, 이들 중 일부는 현재 작은 명작으로 평가된다. Korg는 이로써 프로페셔널 이펙트 기술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DDD1 다이내믹 디지털 드럼, 소형 SQ8 MIDI 시퀀서 등 혁신적 제품들이 있었지만, 반대로 지금은 거의 기억되지 않는 제품들도 있다. 예를 들어 AT12 오토 크로매틱 튜너, CPG01 / CPK01 / CPS01 코드 프로세서, DTM12 튜너/메트로놈, MP100 뮤직 프로그래머, RP100 리듬 프로그래머 같은 장비들이다.




1987년

주요 출시 제품
• 707 퍼포밍 신스
• DDD5 다이내믹 디지털 드럼 모듈
• DRM1 디지털 리듬 모듈
• DS8 61건반 FM 신스
• DSM1 디지털 샘플러 모듈
• PSS60 프로그래머블 슈퍼 섹션
• SQD8 MIDI 시퀀서
• Concert 2500 76건반 피아노
• Concert 3500 88건반 피아노
• Concert 5000 88건반 피아노
• Concert 7000/7100 88건반 피아노
• DP2000C FM 76건반 피아노
• DP3000C FM 88건반 피아노
• DP80 FM 76건반 피아노
• SG1D 88건반 피아노
• DRV2000 디지털 리버브
• DRV3000 듀얼 멀티이펙트/리버브 유닛
• SDD1200 듀얼 디지털 딜레이


1986년이 무척 바쁘게 지나갔지만, 그 다음 해인 1987년에는 Korg의 제품군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와 폭을 확장시키는, 더 많은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무대 뒤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Yamaha와의 협력은 DS8 폴리포닉 신스와 그 동생격인 707의 등장으로 점점 뚜렷해졌다. Korg 마케팅에서는 DS8의 디지털 오실레이터를 "오직 Korg만이 낼 수 있는 음악적 묘약"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이 악기들은 Yamaha 부품을 사용하여 라이선스하에 제작된, 겉모습만 바꾼 FM 신스였다. 하지만 이는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1960년대 게이오 일렉트로닉이 Yamaha 오르간용 리듬 박스를 제작하면서부터 가토와 Yamaha의 관계는 꾸준히 이어져 왔고, 실제로 Yamaha는 수년간 게이오/Korg의 소규모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7년, 이 관계는 또 한 단계 도약했다. Yamaha가 Korg Inc의 지분을 인수하며 경영권을 확보하고, 사실상 Korg를 자회사로 만든 것이다. 놀랍게도 이 합의는 전적으로 우호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세부 조항은 가토 스스로 작성했다고 한다. 합의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두 회사가 각각 독립된 기업으로 남아, 자유롭게 개발을 이어가고 시장에서 정면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러한 자본 투입은 해당 연도의 제품 개발에 영향을 줄 만큼 시기적으로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Korg의 1987년 신제품들은 1986년의 분위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DDD5는 DDD1의 개정판이었고, DSM1은 DSS1 키보드의 랙마운트 확장판이었다. DSM1은 음원 수를 2배로 늘리고, RAM 용량과 샘플 해상도를 개선했으며, 멀티팀버 기능까지 추가했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잡지에서는 이를 두고 "다루기는 악몽이고, 팔기는 재앙"이라고까지 혹평했다.



이 밖에도 DRM1 디지털 리듬 모듈(카드 슬롯과 5,000노트 드럼 시퀀서를 지원하는 1U 랙마운트), 리듬 머신/작곡 도구/전통적인 자동 반주 기능을 결합한 PSS60 프로그래머블 슈퍼 섹션 등이 출시되었지만, 이들 제품은 모두 후속 모델 없이 일찍 단종되었다.



따라서 1987년의 가장 중요한 신제품은 아마도 디지털 피아노였을 것이다. 그 해에만 무려 3가지 시리즈가 등장했다. 가장 유명한 모델은 1986년에 출시된 SG1을 개선한 SG1D 샘플링 그랜드였다. 76건반이었던 SG1은 시장에서 별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88건반 SG1D는 비록 12보이스 동시 발음, 12비트 샘플 해상도, 단 4가지 음색(추가 음색은 카드 슬롯)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프로 연주자들의 선택을 받은 적이 있다. 반면, 가정용 디자인의 DP3000C, DP2000C, DP80은 오르간과 현악기 음색을 포함한 FM 음원을 제공했지만, 이미 다른 제조사들이 표준으로 자리잡은 사실적인 표현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세 번째 라인업인 Concert 피아노는 샘플 음원을 탑재하고, 스테레오 앰프와 스피커까지 포함한 가정용 패키지였으나,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이들 모델은 흥미로운 점이 있었는데, 바로 회로 기판이 전적으로... 그렇다, Yamaha가 제작한 것이었다.




1988년

이정표 - Korg M1



1988년에 음원 생성, 퍼커션, 시퀀싱을 하나의 MIDI 악기에 결합한다는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M1은 이 개념을 최신화하여 과거의 Fairlights와 Synclaviers가 요구하던 가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패키지로 구현해냈다. 하지만 M1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또 있었다. Korg는 4MB ROM을 루프 처리된 16비트 PCM으로 가득 채워, 프로그래머들이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게 했다. 여기에 디지털 이펙트 섹션은 과거 어느 키보드보다도 극적으로 확장되어, 기존 악기들에 들어 있던 딜레이와 코러스뿐 아니라 페이저, 플랜저, 딜레이, 디스토션, 오버드라이브, 익사이터, 수많은 리버브까지 제공했다.

M1은 다른 면에서도 뛰어났다. 예를 들어 Korg는 엔벨로프, LFO, 필터와 같은 표준 신스 개념을 사용하여, M1의 AI(Advanced Integrated) 운영 체제를 이해하고 편집하기 쉽게 만들었다. 또한 확장성도 갖추고 있었다. PCM 카드를 위한 전용 슬롯이 있었고, 또 하나의 슬롯은 ROM 및 RAM 카드를 지원했다. 하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도약은, 연주자가 5옥타브 벨로시티 및 애프터터치 대응 키보드에서 16 보이스를 할당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었다. 3가지 작동 모드를 통해 최대 8개의 패치를 동시에 레이어, 스플릿, 크로스페이드, 벨로시티 페이드, 혹은 최대 8개의 독립적인 MIDI 채널로 구동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흔하지만, 14년 전에는 혁신적인 기능이었다. 단점이 하나 있었다면, 필터 레조넌스가 없었다는 점인데, 이는 이후 7년간 모든 Korg AI 기반 키보드, 모듈, 워크스테이션의 한계로 작용했다.


주요 출시 제품
• M1 61건반 뮤직 워크스테이션
• O3 ‘Symphony’ 오케스트라 음원 모듈
• P3 피아노 모듈
• Z3 & ZD3 FM 기타 신스 및 드라이버

1980년대 중반 내내, Korg가 10년이 끝나기 전에 키보드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조짐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korg 홈페이지에 실린 Korg의 회사 연혁에도 1983년부터 1988년 사이의 제품은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1988년 여름, Korg는 음악 합성과 제작을 영원히 바꿔놓을 키보드를 발표했다. 바로 Korg M1이었다.

M1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음악 기술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1970년, Minimoog가 모노포닉 아날로그 신스를 대중화했다. 7년 후 Prophet 5가 폴리포니를 가능하게 했고, 1983년에는 Yamaha DX7이 디지털 합성의 지배를 확립했다. DX7은 4년간 군림하다가, 1987년에 Roland가 D50으로 규칙을 다시 썼다. 이것은 최초의 S+S(Sample & Synthesis) 악기였으며, 바이팀버 구조에, 최초로 디지털 리버브 섹션을 탑재한 키보드로서, 프로페셔널 키보드가 만들어내는 ‘완성된’ 음질에 대한 기대치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각 주요 혁신은 점점 더 짧은 주기로 등장했지만, D50 출시 불과 1년 뒤에 Korg가 M1을 내놓았을 때는 거의 모두가 놀랐다. Roland의 뒤를 쫓기에는 너무 빨랐기 때문에 카피일 수는 없었다. M1은 샘플 기반이었고, 2개의 디지털 이펙트 유닛을 탑재했으며, 16파트 멀티팀버를 지원했고, 실용적인 멀티트랙 시퀀서까지 내장했다. 게다가 VLSI(초대규모 집적 회로)와 서피스마운트 회로 설계 기술 덕분에 M1은 2,000파운드 미만의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키보드 워크스테이션의 개념을 정의했다. 당연히 다른 제조사들도 이 공식을 따라 했고, M1은 곧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지만, 기준을 세운 것은 Korg였다. 혁신적이고, 사용하기 쉽고, 놀라울 만큼 다양한 사운드를 제공한 M1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탄생시켰다.



Korg의 또 다른 신제품인 P3 피아노 모듈과 O3 Symphony 모듈은 M1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사실 Q1 시퀀서와 S1 드럼머신/샘플러/시퀀서도 M1과 동일한 알루미늄 섀시를 사용했다. 그러나 Q1은 참담하게 실패했고, S1은 프로토타입 단계를 넘지 못한 채 시장에 출시되기도 전에 폐기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Korg는 76건반 모델인 Concert 600, Concert 800, 그리고 풀사이즈 Concert 6000 같은 가정용 디지털 피아노 라인업을 확장했다. 세련된 디자인과 빌드 품질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회사 역사에 발자취조차 남지 못했다.



그해 마지막 주목할 만한 제품은 Z3 기타 신스와 이에 동반된 ZD3 기타 신스 드라이버였다. 이는 Korg와 Yamaha FM 기술의 결합에서 태어난 제품으로, Korg의 유일한 피치-투-MIDI 변환 시도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꽤 괜찮았으며, 만약 Korg가 M1의 음원 엔진을 포함하도록 재설계했다면 큰 성공을 거뒀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Z3는 불과 몇 달 일찍 시장에 나왔고, FM 엔진은 충분했지만 구매자들을 열광하게 만들 수준은 아니었다.




1989년

주요 출시 제품
• A3 시그널 프로세서
• M1R 랙마운트 워크스테이션
• M1R EX 랙마운트 워크스테이션
• M3R 랙마운트 신스
• T1 88건반 워크스테이션
• T2 76건반 워크스테이션
• T3 61건반 워크스테이션
• New SGX1D 88건반 디지털 피아노



앞서 언급했듯, M1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Korg의 광범위한 키보드와 모듈 라인의 시발점이 되었다. T3는 61건반 신스로, 확장된 샘플 ROM을 탑재했다. T2는 T3를 기반으로 한 76건반 세미-웨이티드 키보드 모델이며, T1은 88건반 피아노 액션 키보드로, 현대식 샘플링 피아노의 외관과 터치감을 제공했다. 이 모든 제품은 더 큰 디스플레이, 기본 탑재된 디스크 드라이브, 향상된 시퀀서 메모리와 MIDI 기능을 갖췄다.



반대로, M1R은 M1을 2U 랙마운트 케이스에 담은 모델이며, M1R EX는 T3의 랙버전이다. 가장 저렴한 M3R은 1U 랙마운트로, 본질적으로 M1 음원 엔진의 절반만을 담았다. 그러나 이것조차 Korg의 AI(Advanced Integrated) 기술 활용의 한계는 아니었다. A3 랙마운트 멀티 이펙트 유닛은 AI 음원 엔진 없이 AI 이펙트 프로세서를 활용했다.

M 시리즈와 T 시리즈는 이후 많은 확장과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프로그램 및 PCM 카드, M3R용 RE1 리모트 컨트롤, M1/M1R/T3용 ROM 업그레이드, 그리고 대형 T 시리즈 키보드가 내부 PCM 대신 샘플링 음원을 활용할 수 있는 추가 보드 등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1989년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바로 이러한 무대 뒤에서의 움직임이었다.

1980년대 동안, Dave Smith와 John Bowen은 Prophet 5를 설계 및 사운드 튜닝한 Sequential Circuits의 핵심 인물로 명성을 얻었으며, MIDI 설계와 채택, 멀티팀버 및 벡터 신스와 같은 주요 혁신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들의 회사는 재정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지속적인 재정난에 시달렸다.

1988년, Sequential Circuits가 파산하고, FM 신스가 여러 신스 회사의 몰락에 한몫을 했던 운명의 아이러니 속에서 Yamaha가 회사를 인수했다. Smith와 그의 팀은 DSD Inc.라는 R&D 부서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SY22와 SY35 벡터 신스 키보드 및 모듈과 같은 성공적인 후속 제품에도 불구하고, 이 결합은 오래 가지 못했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Yamaha는 부서를 폐쇄했다.

Yamaha는 카토에게 DSD 폐쇄를 사전에 알렸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카토는 Smith와 그의 팀을 설득해 Korg에서 일하도록 했다. 1989년 5월, 그는 실리콘밸리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Smith는 부사장으로 임명되었고, 약 12명의 직원과 함께 Korg의 R&D는 벡터 신스의 또 다른 변형 연구를 시작했다.




1990년

이정표 - Wavestation 패밀리



프로 키보드 연주자들에게 “무인도에 하나의 악기만 가져갈 수 있다면?” 하고 물으면 대답은 결코 “Wavestation”이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가져갈 악기는?” 하고 물으면 대답은 자주 “Wavestation”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키보드 리그에서 중심이 되는 건 작곡과 연주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워크스테이션이다. 시퀀서가 없는 Wavestation은 결코 그 역할을 해낼 수 없다. 하지만 트랙을 색다르게 꾸미는 데 있어 Wavestation은 디지털 신디사이저 중 ‘더블 초콜릿 칩, 피칸과 메이플, 럼 앤 레이즌’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avestation은 단점도 없지 않았다. 운영체제에 남아 있던 여러 버그와 누락된 기능들은 제품의 수명 내내 수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Korg가 제공한 패치 카드 중 하나에 ‘바이러스’가 실려 전파된 적도 있었다. 이로 인해 각종 문제가 발생했으며, 해결 방법은 해당 신스를 재초기화하는 것뿐이었다.

아마도 가장 심각한 한계는 많은 사용자들이 눈치채지 못한 부분이었다. Wavestation을 켜면, 최대 8개의 패치를 이펙트 유닛을 거쳐 동시에 연주하는 퍼포먼스가 기본 제공된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여기까지만 사용했지만, 더 깊이 들어가 개별 패치를 멀티팀버로 연주해 보면 퍼포먼스와는 차원이 다른, 부족한 음질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Wavestation의 사운드가 이펙트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펙트 유닛이 단 2개뿐이라 멀티팀버 연주를 시도하면 절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avestation은 여전히 강력하고 인기 있는 음원 모듈로 남았다. 다른 클래식 신디사이저들처럼,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주요 출시 제품
• Wavestation 61건반 폴리 신스
• S3 리듬 워크스테이션 모듈


Korg R&D의 결실은 이듬해 모습을 드러냈다. 또다시 벡터 합성을 주된 합성 방식으로 채택한 Wavestation은, PCM을 오실레이터로 사용해 샘플을 레이어하거나 매끄럽게 변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PCM들을 연결해 웨이브 시퀀스(wave sequences)를 만들어내는 기능이었다. 이로써 깊고 따뜻하며, 지금까지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진화형 패드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John Bowen이 처음 구상했던 웨이브 시퀀스 개념을 뛰어넘어, Korg의 보이싱 프로그래머들은 이를 리드믹 패치를 만들어내는 데 활용했다. 이렇게 해서 Wavestation의 전형적인 (그리고 이제는 클리셰가 된) 시퀀스들이 태어났다. 피아노나 드럼 샘플이 없음에도, 많은 시퀀스들은 사실상 하나의 완결된 백킹 트랙처럼 기능했으며, 원하는 음높이에서 단 한 음만 눌러도 복잡한 리듬 음악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덕분에 Wavestation은 막 태동하던 일렉트로닉 댄스 장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곧 벡터 합성과 웨이브 시퀀스의 조합은 다양한 층위의 뮤지션들을 끌어들였다. 힙합과 하우스 아티스트들은 ‘그루브’ 기능에 집중했고, 거의 모든 일렉트로닉 및 뉴에이지 작곡가들은 무한히 펼쳐지는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내는 데 활용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Wavestation을 직접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복잡한 편집 시스템 때문이었고, 또 워낙 뛰어난 프리셋이 기본 제공되다 보니 많은 유저들이 그냥 공장 사운드를 그대로 사용했다.



한편, S3는 중도에 무산된 S1 리듬 워크스테이션의 후속작으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수 반영되었는데, 가장 급진적인 점은 드럼의 어택과 디케이 성분을 각각 ‘헤드’와 ‘쉘’ PCM으로 분리해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새로운 악기를 창조할 수 있었다. 또 패턴 기반 트랙과 리니어 트랙을 하나의 시퀀서 안에 결합했으며, 드럼 머신에 듀얼 이펙트 프로세서를 넣었고, 타임코드 기능까지 지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S3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Korg는 이펙트 유닛, 튜너, 디지털 피아노를 계속 출시했다. 그중에서도 가정용 Concert 30, 40, 50 시리즈는 지금은 거의 잊힌 존재지만, MARS(Multiplexed Analysis and Re-Synthesis)라는 또 하나의 합성 방식 이름을 남겼다. 사실 이는 단순히 AI 피아노 샘플을 벨로시티에 따라 크로스페이딩한 기술일 뿐이었다.




1991년

주요 출시 제품
• 01/W 61건반 워크스테이션
• 01/W FD 61건반 워크스테이션
• 01/RW 랙마운트 워크스테이션
• Wavestation EX 61건반 폴리 신스
• Wavestation A/D 랙마운트 폴리 신스/신호 프로세서
• A1 멀티 이펙트 프로세서
• A2 멀티 이펙트 프로세서
• A5 멀티 이펙트 유닛
• A5 Guitar 멀티 이펙트 유닛
• A5 Bass 멀티 이펙트 유닛



M1은 출시 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25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Korg의 개발자들은 안주하지 않았다. 1991년, M1을 단종하지 않은 채 그 후속기종인 01/W를 발표했고, 이 제품은 곧 독자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다.

제품명이 붙여진 과정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원래는 신스를 M10으로 명명하려 했지만, 영어 알파벳을 읽지 못하는 일본인 그래픽 아티스트가 로고 이미지를 180도 돌려 붙여 버렸다는 것.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01/W는 단순히 M1을 다시 디자인한 수준을 넘어서, AI2(AI 제곱)라 불리는 향상된 음원 엔진을 탑재했다. 이는 M1의 3개 프로세서를 하나의 칩으로 대체해 제조 비용을 줄이고 장기적 신뢰성을 개선한 것이다.

여러 면에서 AI2는 기존 AI와 유사했지만, 폴리포니를 2배로, 시퀀서 트랙 수를 2배로, PCM과 이펙트도 추가했다. 여전히 필터 공명 기능은 없었지만, ‘웨이브셰이핑(waveshaping)’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제공했다. 이는 기본 샘플의 파형을 왜곡해 고조파를 추가하고 새로운 음색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60가지 웨이브셰이핑 옵션 대부분은 끔찍하게 찌그러지고 쓸모없는 소리를 냈지만, 일부 사운드에서는 이 과정에서 생성된 고주파가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했다.



Wavestation 쪽에서는, Korg가 결국 피아노와 드럼 샘플을 추가하고 몇 가지 새로운 이펙트 알고리즘을 더해 Wavestation EX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76건반 모델이 없었던 탓인지 ‘첫 번째 선택’의 악기가 되지는 못했다. 이어 출시된 Wavestation A/D는 EX의 2U 랙마운트 버전으로, 아날로그 입력을 지원하여 신디사이저 엔진과 연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강력한 보코더 및 신호 프로세서로 활용 가능했다.



1991년에 등장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제품군은 지금 와서는 그리 큰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A5 시리즈와 그 파생 모델들은 Korg가 이펙트 시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 제품들은 스튜디오급이라기보다 고급형 스톰프박스에 가까웠지만, 이후 수년간 출시될 수많은 A 및 AX 유닛들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Korg는 스튜디오 이펙트 개발도 이어가며, 강력한 A1 멀티 이펙트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영국 기준 1200파운드에 달하는 가격은 일반 보급형 장비의 3배 수준이었지만, 방대한 알고리즘, 최대 7개 동시 이펙트, 프로급 입출력 단자 덕분에 까다로운 뮤지션들의 19인치 랙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저가형 A2는 A3와 마찬가지로 M1의 이펙트 칩을 사용한 제품으로, 단지 각주 수준의 의미만을 가진다.




1992년

이정표 - Korg Soundlink



Soundlink는 3가지 주요 유닛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5U 프로세서로, 시스템의 두뇌 역할과 모든 입출력을 담당했다. 입출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밸런스 아날로그 I/O 8채널, 스테레오 아날로그 출력, 디지털 AES-EBU 입력, 할당 가능한 AES-EBU 출력, AUX, 전용 메트로놈 출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고급 기기에 걸맞게 LTC/SMPTE, 컴포지트 비디오, VITC, RS422, Sony 9핀 VCR 원격 제어 등 동기화 및 제어 인터페이스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듀얼 MIDI In/Out/Thru까지 포함되었다. 이는 단순한 ‘저가형’ 옵션이 아니었는데, Soundlink는 아마도 MTC 동기화를 제공한 최초의 전문 레코더였을 것이다.

두 번째 유닛은 디지털 오디오 레코더로, 또 다른 5U 랙에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Exabyte 백업 장치, 추가 SCSI 장치를 위한 슬롯 2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녹음 품질은 당시 표준에 맞는 16비트, 44.1kHz 및 48kHz 샘플링 주파수였다.

세 번째 유닛은 아름답게 설계된 전용 컨트롤 서페이스였다. 거의 처음으로 디지털 녹음 제어와 자동화된 디지털 믹서를 통합했으며, 대형 레벨 인디케이터와 백라이트 LCD를 제공했고, 이 정보를 표준 CRT 모니터에 표시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자체 유압 스탠드가 제공되었는데, 여기에는 PC 키보드를 위한 슬라이딩 트레이까지 있었다.

이 시스템의 기능은 1992년 당시 최상급이었으며, ‘저비용’ 녹음 및 포스트 프로덕션 시스템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3밴드 EQ, 게이팅, 컴프레션/리미팅, 강력한 리버브 프로세서를 제공했으며, 세션당 최대 400개의 큐를 저장할 수 있는 스냅샷 자동화를 지원했다. MIDI 시퀀서는 Korg 키보드 워크스테이션 사용자라면 익숙했을 기능이었고, 최대 50,000 이벤트(96ppqn)를 지원했다. 그러나 Soundlink의 가장 큰 강점은 특정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점이었다. 1992년 당시 PC와 여러 외장 기기를 조합해 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단점은 일부 기능이 최고급 시스템과 저가형 시스템 사이에 걸쳐 있었다는 점이다. 즉, 최고의 성능도 아니고 가장 저렴한 가격도 아니었다.

결국 Soundlink는 Korg가 신디사이저와 이펙터를 넘어 훨씬 더 큰 영역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판매량은 극히 적어 개발 비용을 회수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주요 출시 제품
• 01/W Pro, 01/W Pro X 워크스테이션
• 03R/W 신스 모듈
• Soundlink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
• Wavestation SR 신스 모듈




Korg는 4년 동안 키보드 시장을 지배했으며, 그 다음 12개월 동안 제품 라인업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76건반 01/W Pro와 88건반 01/W Pro X가 기존 01/W 라인업에 합류하면서 노후화된 T2와 T1을 대체했다. 또, M1이 M3R을 낳았듯, 01/W는 03R/W를 낳았다. 이는 상위 기종의 절반 AI2 엔진을 담은 1U 랙 마운트였다.

하지만 음악 산업에서 4년 동안 눈부신 성공을 거둔 후에도, Korg는 여전히 프로 오디오 업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1992년, Korg가 영국 가격으로 20,000파운드(부가세 별도)에 Soundlink라는 8트랙 디지털 오디오 레코더 및 자동 디지털 믹서를 출시했을 때 업계는 놀랐다. 지금은 터무니없이 비싸게 들릴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비교적 경쟁력이 있었고, 실제로 훨씬 더 고가의 제품과 경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Korg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었다. 실적도, 유통 채널도, 브랜드 인지도도 없던 Korg가 최상위 시장에 곧장 뛰어든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Soundlink는 전 세계적으로 몇 대밖에 팔리지 않았고, 참담하게 실패했다.
이런 실수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 Korg UK의 매니징 디렉터 Rob Castle은 이렇게 말했다.

“Soundlink는 하나의 실험으로 봐야 합니다. Korg는 직선적인 사고를 하는 회사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시도할 용기를 가진 회사입니다. 돌이켜보면 Korg Japan이 이 시장을 제대로 개척할 담당자를 두었어야 했습니다. 저희는 영국에서 Mark Lawrenson이라는 사람을 영입했지만, Korg의 전 세계 유통업체들은 Soundlink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전문 DAW는 신디사이저 딜러를 통해 팔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는 점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해의 또 다른 출시작은 Wavestation의 최종 버전인 Wavestation SR이었다. 1U 랙 마운트로, 이는 신스를 직접 프로그래밍하지 않는 사용자들을 위한 제품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SR은 다른 Wavestation보다 훨씬 많은 메모리를 제공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주자들에게 필요한 패치가 이미 들어 있었다. 둘째, 1U 크기에 모든 것을 담으면서 가장 프로그래밍하기 어려운 제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컴퓨터 기반 에디터가 필요했으므로, 대부분의 사용자는 프로그래밍을 시도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Korg가 이 기술의 개발을 중단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벡터 합성과 웨이브 시퀀싱 시스템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76건반, 88건반 버전의 Wavestation이 나왔고, 음원 동시 발음 수와 멀티팀버 이펙트 할당이 개선되었다면, 더 많은 판매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델은 나오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1993년

주요 출시 제품
• A4 기타 이펙트 유닛
• A4 Bass 기타 이펙트 유닛
• i3 61건반 인터랙티브 뮤직 워크스테이션
• AG10 Audio Gallery GM 모듈
• 05R/W 신스 모듈
• X3 61건반 워크스테이션
• X3R 워크스테이션 모듈


Korg의 차기 제품들은 AI와 AI2의 성공을 기반으로 이어졌다. 이미 성공적인 공식을 굳힌 회사는 굳이 큰 변화를 줄 이유가 없었다.



X3와 X3R은 확장된 AI2 엔진을 사용했는데, GM 음원 세트를 제외하면 새로울 것이 거의 없었다. 사실 X3는 01/W의 웨이브셰이핑 기능을 잃고, 대신 '컬러(colour)'라는 파라미터가 추가되었는데, 이는 필터 레조넌스를 흉내 내려 했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미약한 음색 강화 기능에 불과했다. 또한 X 시리즈는 M 시리즈와 0 시리즈에서 쓰이던 Yamaha 제작 건반을 포기하고, Fatar사의 건반으로 대체했는데, 훨씬 가볍고 손맛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멀티샘플 개수는 255개에서 340개로 늘었지만, 많은 연주자들에게 X3는 단지 M1과 01/W를 저가로 대체한 제품일 뿐이었다. 그 외에 소형 모듈 05R/W도 있었는데, X3의 내부 구조를 가져오되 시퀀서와 절반의 패치를 제외하고, 대신 Mac이나 PC와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시리얼 포트를 추가했다.



같은 사운드 엔진은 AG10 Audio Gallery에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게임 및 ‘데스크톱’ 음악 시장을 겨냥한 General MIDI 모듈이었다. 겉보기에는 번들된 시퀀서, MIDI 플레이어, 그리고 (Mac에서는) 에디터까지 포함해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물리적 컨트롤도 없고, 메모리도 없으며, Korg의 특유 이펙트 섹션도 빠져 있었기에, 진지한 MIDI 뮤지션에게는 큰 매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타깃층에게는 너무 복잡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Korg는 이 아이디어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았다.



훨씬 더 흥미롭고 (그리고 훨씬 더 성공적인) 제품은 i3였다. 이 제품은 Korg의 ‘인터랙티브’ 제품군의 첫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i3가 나오기 전까지, 자동 반주 키보드는 주로 가정용 (이를테면 집안 모임에서 할아버지가 오르간을 치는 것 같은 용도)에 국한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i3는 그 인식을 단번에 뒤집었다. i3의 핵심은 X3와 동일한 AI2 엔진이었고, 이는 충분히 ‘프로’ 키보드로 사용할 만한 사양이었다. 또한 Korg의 최상위 기종에 있던 멀티트랙 MIDI 시퀀서를 유지하면서, 여기에 스타일과 편곡(Styles and Arrangements) 기능을 추가하여 연주자가 밴드 인 어 박스(band-in-a-box)처럼 활용하거나 작곡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유일하게 빠진 것은 스피커였는데, Korg 경영진은 “진지한 악기에 내장 스피커는 너무 촌스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회사들이 자동 반주 키보드와 연관된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하던 상황에서, i3는 상당히 과감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장의 최상위에 포지셔닝한 이 악기는 전형적인 ‘촌스러운 백비트’도 가능했지만, 강렬한 록과 댄스 리듬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역시 Korg 키보드의 성공은 공장 출하시 기본으로 제공되는 보이스 퀄리티 덕분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해의 가장 큰 뉴스는 공식 발표조차 되지 않은 사건이었다. 1987년 Yamaha의 자금 투입 덕분에 그 이후 5년 동안 Korg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카토 츠토무는 이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Yamaha가 보유한 Korg의 지분 대부분을 매입해, 사실상 독립을 되찾게 되었다.




1994년

이정표 - Wavedrum



Wavedrum의 탄생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Korg R&D에서 일하던 Sequential 출신 개발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무렵,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Steve O’Connell은 피지컬 모델링 알고리즘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Drag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소프트웨어 모듈러 신스와 비슷하게, 여러 블록들을 연결해 구성할 수 있는 디지털 모듈러 신스였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Drag의 실행 속도가 매우 느려, 실제 연주보다 훨씬 늦게 소리를 계산해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O’Connell은 SynthKit이라는 새로운 버전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Macintosh 컴퓨터에서 구동되도록 프로그래밍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실제 연주보다 훨씬 느릴 수밖에 없었지만, 마침 매킨토시 확장 슬롯에 장착할 수 있는 DSP 보드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개발자들이 프로그래밍과 연주를 하며 즉각적으로 결과를 들을 수 있게 되자, Korg 팀은 OASYS(Open Architecture Synthesis System)라는 키보드 개발에 착수했다. OASYS는 SynthKit 알고리즘을 실시간으로 사운드 생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Korg의 피지컬 모델링 기술을 최초로 적용한 악기는 키보드가 아닌, 바로 Wavedrum이었다.

많은 뮤지션들은 Wavedrum이 PCM 기반 드럼 패드에서 얻을 수 있는 소리를 단순히 더 비싼 값으로 제공하는 장치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Wavedrum은 전통적인 퍼커션 사운드부터 오버드라이브 리드 기타까지 모든 종류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Koto 패치는 실제 줄 악기 모델로, 뜯는 위치, 줄의 댐핑, 뜯는 잡음 등 다양한 요소를 제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Korg는 Wavedrum의 잠재력을 연주자들에게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고, 그 깊이를 탐구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주요 출시 제품
• AX305 기타 이펙트 프로세서
• AX30G 기타 이펙트 프로세서
• G 시리즈 프로세서
• i2 76건반 인터랙티브 뮤직 워크스테이션
• Wavedrum
• X2 76건반 워크스테이션
• X5 61건반 폴리 신스


1994년은 Korg의 제2시대가 끝나는 해였다. 그 이유는 이 해에 출시된 한 제품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기존 기술의 연장선상에 있던 몇몇 신제품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X2는 X3의 76건반 버전으로,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크지 않았다. 조금 더 흥미로운 모델은 X5였는데, X3 엔진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플로피 드라이브와 시퀀서를 제외한 모델이었다. i2는 76건반으로 확장된 i3 버전이었다. 이펙트 부문에서는 AX 프로세서들이 전년도 A 시리즈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등장했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Toneworks, 즉 G 시리즈 이펙트 프로세서였다. 이들은 대만에서 라이선스 생산되었으며, Korg USA는 주력 제품군과 기타 중심 라인을 구분하기 위해 정식 Korg 브랜드로 전 세계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



만약 Korg USA가 G 시리즈가 회사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판이었다. G1 디스토션 유닛, G2 어쿠스틱 기타 프로세서, G3 멀티 이펙트 유닛, G5 신스-베이스 프로세서는 각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키보드 연주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은 G4 Rotary Speaker Simulator였다. 이 제품은 진공관 증폭 Leslie 캐비닛의 모든 기능을 제공했으며, IPE(Integrated Parameter Editing)라는 알고리즘을 사용해 로터의 속도와 가속을 연동시켰다. 가격이 저렴하고 크기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G4는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어떤 오르간 패치든 마치 거친 먼지가 쌓인 오래된 C3 오르간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를 구현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 해의 진짜 뉴스는 저가 이펙트나 신스가 아니었다. 시장의 정반대편에서 등장했다.

이전 10여 년 동안 학계에서는 새로운 합성 방식인 피지컬 모델링(Physical Modelling)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 기법은 디지털 신호 처리(DSP)를 활용해 실제(또는 상상 속) 악기의 반응과 뉘앙스를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DSP 기술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를 주요 사운드 엔진으로 사용하는 상업용 신스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따라서 Korg가 이를 발표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놀라웠던 것은 그 악기의 정체였다. 당시에는 "Knightsbridge 변기 뚜껑처럼 생겼다"고 묘사되었던, 바로 Wavedrum이었다.

Korg의 기발한 발명품들이 늘 그렇듯, Wavedrum은 (회사 내부 한 엔지니어의 표현을 빌리면) “전형적인 행복한 사고(happy accident)”였다. 일본의 한 수석 엔지니어가 민속 퍼커션에 관심이 많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퍼커션 합성에 적용하고 싶어 했다. Korg처럼 기업가적인 회사만이 그에게 시간과 자원을 제공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 시도가 성공할 듯 보였다. Wavedrum은 시연이 열리는 곳마다 호평을 받았고, 잡지 리뷰 또한 긍정적이었다. 타악 연주자가 한 대의 드럼 위에서 광범위한 사운드를 연주하고, 타격 위치와 강도에 따라 소리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 모두가 흥분했다.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최대로 활용하려면 RE1 Remote Controller가 필요했지만, 아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Wavedrum의 시장은 매우 협소했다. 게다가 Wavedrum 한 대의 가격은 PCM 기반 MIDI 드럼 킷 전체 가격과 맞먹었고, 저가 드럼 킷(스탠드와 심벌 포함)의 약 3배에 달했다. 결국 Korg는 몇 대밖에 팔지 못했다. 만약 킥, 스네어, 탐탐 패드까지 포함한 완전한 드럼 킷을 구성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기술이 상업적으로나 비용 측면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았다.

Korg는 다시 한번 무언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지만, 뒤돌아서 떠나버렸고, 그 후 시장은 다른 제조사들이 차지했다.




Korg UK의 설립

Rose Morris는 오랜 역사를 가진 영국 회사였다. 1920년대에 설립되어, 1930년대에는 하모니카를 수입했고, 축음기, 밴조, 드럼을 제작했으며, 아코디언을 수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EKO 기타와 GEM 오르간을 들여왔다. 1960년대에는 Marshall 앰프를 수출하기 시작했고, 1967년에는 런던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Marshall이 자사 유통을 직접 맡으면서 Rose Morris는 Marshall을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결과 Vox를 인수했다.

1980년대에 이 회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런던 중심가, 해로우, 헴멜 헴프스테드, 헐, 요크 등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Korg, Takamine, Jupiter, Ludwig, Ovation의 영국 내 유통권을 보유했다. 또한 자사 브랜드로는 Vox, 그리고 마우스피스 제조업체 Berg Larsen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고, 1991년 말에는 매년 수십만 파운드의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더는 이런 식으로는 버틸 수 없었고, 결국 1992년에 Korg가 회사의 지분 다수를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

인수 후에는 즉각적인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Vox 공장은 폐쇄되었고, Vox 브랜드의 생산은 Marshall이 맡게 되었다. Berg Larsen은 매각되었으며, 대부분의 유통 라인은 정리되었다. 런던 매장은 악보 회사 IMP에 매각되었고, 다른 매장들 역시 팔리거나 문을 닫았다.

이 시점에서 Rose Morris는 이미 시장에서의 신뢰도를 크게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 Korg는 회사 이름을 Korg UK로 바꾸었고, 유통 사업을 Korg, Takamine, Jupiter에만 집중하도록 축소했다.

1995년, Korg UK는 런던에서 밀턴 케인스로 이전했으며, 이 시점에서 다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누적된 부채와 임대 계약 때문에 200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익을 유지하며 일본 본사에 기여할 수 있었다. 현재는 Korg Europe이 Korg UK와 같은 건물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 내 배급사들을 잇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최근에는 Vox 연구개발 부서가 밀턴 케인스에 설립되어 미래의 Vox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는 Korg Italy가 독립적인 개발 및 제조 회사로 존재하며, 다수의 Korg 디지털 피아노와 i 시리즈를 담당하고 있다.




Korg의 세 번째 시대

1994년 말, Korg는 신디사이저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이 분야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용 이펙트 유닛 분야에서 입지를 다졌고, 저가형 이펙트와 스톰프박스 시장에도 조금씩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패한 분야도 있었으니, 바로 디지털 레코딩이었다. Soundlink는 시장에서 사라졌고, 이를 대체할 만한 제품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다른 제조사들, 특히 Roland는 워크스테이션 시장에서 Korg의 우위를 위협할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고, Yamaha가 1994년에 출시한 VL1과 VL7은 최초로 물리 모델링(physical modelling)을 활용한 상업용 키보드로, 신디사이저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이제 Korg는 AI와 AI2에 대한 의존을 끝내고, 새로운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아야 했다.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기반은 이미 OASYS와 SynthKit을 통해 마련되어 있었다. 비록 이 제품들이 원래의 형태로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이와 다른 여러 개발들이 Korg의 세 번째 시대를 열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3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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